Return to Home

콩알찐빵의 추억 본문

옛날 글과 사진/한국에서

콩알찐빵의 추억

민아네 2024. 2. 23. 18:34

2003년 11월에 썼던 글입니다.

----------------------------------------------------------------------------------------------

그 시절, 아이들의 도시락은 노란빛이 나는 양은 도시락에 거버 이유식 병이나 오뚜기표 마요네즈 병에 담은 신김치, 이 김치를 담고 유리병 뚜껑을 닫을때, 어머니들은 행여나 국물이 샐까봐 비닐 조각을 포개 놓고 뚜껑을 꼭꼭 비틀어 닫습니다.

 

아이들이 가방을 얌전히 들고 다닐리가 없지요. 가방 손잡이는 있으나 마나, 우주소년 아톰이나 철인 28호가 비닐로 돋을새김 되어있는 그 가방은, 휘휘 돌린다음 공중에 던져지기도 하고 간혹 뒤통수를 치고 도망가는 개구쟁이 친구의 등짝을 향해 날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니 도시락인들 성할리가 없지요. 가끔씩 김치국물이 만신창이가 되어 책이고 가방이고 엉망을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그 시절 보았던 만화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마 보신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과학자와 아이들의 이야기였는데, 이 과학자는, 정말 순수하고 마음씨 착한 과학의 탐구만을 인생의 즐거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아이들을 무척 좋아해서 늘 동네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냅니다.

 

이 과학자는 새로운 발명을 하면 늘 아이들을 불러서 나누어 줍니다.

 

아이들 도시락으로 콩알만한 찐빵을 개발 했는데, 이 찐빵은 보통때에는 딱딱한 콩알같이 생겼는데, 신기하게도 햇빛을 1분간만 쬐면 김이 무럭무럭 나는, 먹음직스러운 커다란 찐빵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59초도 안되고 꼭 1분이라야만 찐빵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볼 수 있었던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찐빵. 출처 전북일보.

 

크기도 요즘 파는 호빵만한 크기가 아니라, 정말 아이들이 두손으로 들고 먹는 그림을 보면, 아이들 얼굴 두배만한 그런 커다란 찐빵입니다. 아이들은 그 맛나고 큰 찐빵을 먹고는, 연신 아이고 맛있다, 아이고 배불러 하면서 깔깔대며 신나게 놉니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방과후에 과학자 아저씨 집에 들리면, 과학자 아저씨는 마음씨 좋게도 콩알 찐빵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자 그런데 아이들의 엄마 입장에서는 세상 알다가도 모를일입니다. 도시락이라면 밥풀떼기 하나도 없이 싹싹 긁어먹고 깨끗한 빈 도시락을 갖고오던 아이들이, 어느날부터 도시락에는 손도 안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날인가는, 동네 엄마들이 모여서 회의를 합니다. 기왕에 아이들이 도시락에 손도 안댈 바에는 차라리 빈 도시락을 싸 주기로 합의를 합니다.

 

다음날, 아이들은 호주머니에 콩알 찐빵을 넣고 신나게 학교를 갔는데, 아뿔사 그날따라 날씨가 흐려서 해가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해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할수없이 도시락을 먹기로 한 아이들은 텅빈 도시락에 배를 쫄쭐 굶다가 집에 가서는, 엄마에게 짜증을 부립니다. 엄마들은 도데체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합니다.

 

59초도 안되고 1분을 정확하게 태양광선을 쬐어야만 찐빵이 되는 콩알찐빵을 보면서 과학 기술이란 저렇게 치밀하고 정확해야 되는 것이구나 어린마음에 감탄을 했고,

 

식품회사, 혹은 군수업체에 기술을 팔기만 해도 억만장자가 될 수 있는, 그런 획기적인 발명품을, 아무런 사심없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과학자 아저씨를 보면서 넉넉하고 행복한 마음을 보았고,

 

또 도시락에 밥 남겨오면 배가 불렀다고 아주 애를 잡던 당시의 엄마들과는 달리, 끝까지 아이들을 믿어주고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는 엄마들을 보며 한없이 따뜻하고 무조건적인 엄마의 사랑을 읽었습니다.

옛날의 만화가게 풍경. 출처 동아일보.

 

그때 그 시절, 어두컴컴한 가게 구석 한켠에 판자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선반, 학교가 끝나면 그곳으로 달려가 휘발유 섞인 본드 냄새, 목공냄새 진동하는 만화책을 펼치면, 그 안에는 김이 무럭 무럭 나는, 그 하얗고 먹음직스럽던, 커다란 찐빵같은 아이들의 마음과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어린시절, 엄마손을 잡고 시장거리를 걷다보면, 커다란 가마솥에 뭉게뭉게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조잡한 나무 유리 진열장에 참으로 탐스럽게 진열되어 있던 그 하얗고 따뜻하고 말랑한 느낌의 찐빵들, 한 입 베어물기만 해도 달디 달은, 검은 팥에 쏟아질듯 배어있던 그 넉넉한 맛.

 

마음 한구석에 깊숙히 있을, 따뜻하고 말랑한 그 콩알찐빵을, 아득히 먼 옛날을 회상하면서 찾아봅니다.

 

 

'옛날 글과 사진 > 한국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어학원 삐끼 습격사건  (0) 2024.02.24
여기는 그 냄새가 납니다.  (0) 2024.02.24
가진자의 교만, 전문가의 교만  (0) 2024.02.23
다모  (0) 2024.02.23
옛날 옛적에  (0) 202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