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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안의 크리스마스 본문

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가마솥 안의 크리스마스

민아네 2024. 2. 18. 20:39

2009년 8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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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겨울 러시아의 스탈린그라드.

1942년 6월 청색작전으로 명명된 스탈린그라드 진격은 초기에는 독일의 승승장구로 시작되었다. 스탈린그라드에 대한 무자비한 폭격으로 시작된 전투는 쏘련군의 필사적인 저항으로 양측의 엄청난 희생자를 내면서 지속되었으나, 겨울이 되면서 독일에 점점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쏘련군의 천왕성작전 (Operaion Uranus) 성공으로 독일군은 측면을 돌파당하고 쏘련군에게 포위되어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보급로가 차단됨으로써 아사자와 동사자가 속출했으나 히틀러는 주변 참모들의 후퇴건의를 무시하고 공중보급이라는 무리수를 둠으로써 오히려 쏘련군 전투기에 대규모 수송기 편대를 잃는 등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었다.

 

쏘련군에 포위되어 있던 독일 제 6군의 사령관 프리드리히 파울루스는 히틀러의 무리한 진지사수 명령을 곧이곧대로 복종하는 충실한 부하였으나 그 결과 22만의 독일군 중 그를 포함 겨우 9만의 병력만이 쏘련군에게 투항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그나마 이듬해 봄 창궐한 페스트에 상당수가 또다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 그림은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한참 진행되던 1942년 겨울 독일군 군의관인 쿠르트 로베르(Kurt Reuber)가 최전선의 참호속에서 그린 것이다.

그의 증언을 인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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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한주가 왔다가 갔다. 그것은 관망과 기다림 그리고 신중한 체념과 확신의 한 주였다.

매일같이 전투의 소음이 가득했고 부상자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무슨 그림을 그릴까 오랫동안 생각했고 마침내 성모 혹은 어머니와 아기를 그리기로 결심했다. 나는 얼어붙은 진흙속의 참호를 화실로 쓰기로 했다. 공간은 그림을 쳐다보기에도 턱없이 좁아서, 나는 높은 의자위에 올라서서 그림을 내려다 보며 그림의 원근과 명암을 판단해야 했다. 

 

모든것이 툭하면 우르르 넘어지기 일쑤였고 내 연필도 진흙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성모의 큰 그림을 걸쳐놓을 곳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기울어진 탁자위에 가까스로 그림을 놓을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릴 종이가 없어 나는 러시아 군사지도의 뒷면에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나는 이 그림을 혼신을 다해 그렸다.


그림은 이렇다 : 어머니와 아기는 서로 기대고 있으며 커다란 외투가 둘을 감싸고 있다. 그것은 안전함과 어머니의 사랑을 상징한다. 나는 성 요한의 빛, 사랑, 생명이라는 단어를 기억해 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랴? 나는 어머니와 아기의 모습이 함축하고 있는 빛과 사랑, 생명과 안전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가 이전의 성탄절에 그랬듯이 "성탄의 문"을 열었을 때, (나무로 만든 참호문에 불과했지만) 동지들은 그림앞에 홀린듯이 경건하게 섰다. 그림 밑의 흙바닥에 박힌 판자위의 램프가 타고 있었다. 우리의 참호 속 성탄절은 이 그림과 함께 나의 동지들의 마음속에 빛, 생명, 사랑 이 세 단어와 함께 가득 들어왔다.

 

나는 다른 군의관들과 환자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저녁을 보냈다.


대대장이 마지막 남은 샴페인을 들며 건배를 제의했다. 우리는 머그컵을 들어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건배를 했으나 한모금도 마시기 전, 바로 근처에서 포탄이 떨어져 터지는 바람에 몸을 날려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나는 진료가방을 움겨잡고 포탄이 터진곳으로 달렸다. 그곳에는 부상자와 참혹한 시신이 있었다. 나의 성탄절 장식이 되어있던 대피호는 졸지에 응급실이 되었다.

 

머리에 파편을 맞은 병사가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조금전까지만 해도 같이 성탄을 축하하던 병사였다. 그는 내내 임무수행을 하다가 잠시 들어왔다 나가면서 이 말을 했었다. "내가 먼저 캐롤을 부르겠습니다. O du Frohliche! (Oh How Joyfully!)" 잠시후 그는 숨졌다.

 

그날 우리 성탄 대피호에서는 견디기 힘든 비통한 일이 많았다. 늦었지만 아직 크리스마스 저녁이었다. 그리고 온세상이 슬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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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성이가 된 부상병들이 줄지어 실려 들어오고 포성이 끊임없이 울리는 비참한 전쟁터의 최 전선 참호속. 초라한 램프가 비추어 주는 성모와 아기의 그림이 눈에 보이는 듯 처연하다.

이 그림은 현재 베를린의 빌헬름 황제 기념교회(Kaiser-Wilhelm-Gedaechniskirche)에 전시되어 있으며 부조 조각으로 다시 기념비로 만들어졌다. 

 

 

왼쪽: 가마솥 속 크리스마스. 오른쪽 : 빛, 생명, 사랑. 아래: 스탈린그라드 요새

 

위 그림을 부조로 만들어 세운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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