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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가을을 재촉하며

민아네 2024. 2. 24. 12:22

2001년 9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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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왔습니다. 이틀 간격으로 내린 비는, 주춤거리며 추워지는 날씨를 더욱 쌀쌀하게 만들었습니다.

 

아파트 앞의 아름드리 나무가 꼭대기에서부터 노랗게 물들어 갑니다.


하루종일 휴일의 느긋함을 즐기다가, 다 저녁때 집앞 공원에 나갔습니다. 여름의 울창했던 숲은 여전히 컴컴할 정도로 그늘을 드리웠지만,  무성했던 초록의 기운은 많이 퇴색해 보입니다.

 

곧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려는 듯이, 다람쥐들은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먹이를 모으느라 무척 분주합니다. 공연히 데리고 나간 우리 강아지가 다람쥐를 보고 짖습니다.

 

이곳에 오기전, 저녁 햇살이 나무가지 사이로 군데군데 부서지는 이렇게 아름다운 숲길을 상상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2003년 9월. Brookbanks park과 이어진 아파트 뒷마당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얼마후 우리는 이 아파트를 떠나서 Vaughan 으로 이사를 했다.

 

한국엔들 오히려 더 아름다운 곳이 있었으련만, 또한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한가한 산책을 즐길수도 있었으련만,
왠지 모르게 산다는 것이, 무엇엔가 쫒기듯한 피곤때문에 여유있는 산책이란 쉽지가 않았지요.

 

무엇을 쫒으며 그렇게 바쁘게 살았는지, 무엇때문에 친구들 동료들 직장 선배 후배들과 술을 마시며 무엇을 성토했는지, 지금은 잘 생각이 날것같지 않습니다.

 

지금엔들 한국에서의 생활과 별반 다를것이 없는 똑같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보다 조금 더 주어진 시간의 여유가 나에게는 그렇게 소중하고 여유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히 물리적인 여유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 아닐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씩 직장 동료들과 친숙해 지면서, 또 주변 이웃들과 친해지면서, 내가 캐나다에 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가, 문득 아 여기가 외국이구나 생각이 들면 풋!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민이라는 커다란 숙제를 놓고, 터질듯한 마음으로 잠못이루던 시간들과, 폭풍같이 지나간 그 준비 기간들이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르고, 또 이민을 떠나오던 비행기 안에서 눈물을 흘리던 아내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시간 곤히 잠들어 있는 아내와 딸의 얼굴을 보면서, 정말로 모든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 밤, 창문을 투닥투닥 두드리며 또다시 쏟아지는 빗줄기와, 또 탁 트인 검은 밤하늘 사이로 천둥 번개가 장엄하게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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