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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생각

대학공부는 힘들어

민아네 2013. 11. 18. 09:51

밤 11시.

민아로부터 전화가 왔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으니, 버스 타지 말고 전화를 하면 데리러 간다고 당부를 해 놓았던 터이다.

요즘은 매일같이 미대 실습실에 있다가 열한시 열두시가 되어야 들어온다.
집에 들어와서 바로 자는 것도 아니다. 두시는 기본이요 세시나 되어야 자는 듯 하다. 가끔은 네시까지 불이 켜 있기도 한다.

물론 공부가 매일같이 이렇게 휘몰아치지는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벌서 병이 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일주일에 이틀은 수업이 없어 늦잠을 잘 수 있지만, 나머지 요일은 위에 말한 것 처럼 아예 밤을 새다시피 한다.
더우기 화요일 목요일은 50킬로미터 떨어진 오크빌이라는 곳에 있는 쉐리단 칼리지에 수업이 있기 때문에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다행히 민아가 다니는 요크 대학은 집에서 차로 한 10분만 가면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디자인 학과의 특성상 컴퓨터 그래픽을 많이 사용하고, 고품질 칼라 프린트를 많이 해야 한다. 그런 비싼 장비는 개인이 구입하기는 어렵고 대신 학교에 잘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장비 사용도 민아가 학교에 오래 머무르는 이유 중 하나다.

자다가 일어나서 금방 민아를 데리러 가서 태우고 오는데 왠일인지 민아가 풀이 많이 죽어 있다. 내일이 과제 제출인데, 학교 프린터가 작동이 되지 않아서 프린트를 못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건 너의 책임이 아니고, 또한 너만 그런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다 프린트를 못 하지 않았냐 했더니 그건 맞는데 그래도 과제를 못 마쳤으니 큰일이라 한다.

집에 들어오니 11시 반쯤 되었다. 옷을 갈아입는데 민아가 말한다.

- 아빠, 정말 정말 미안한데, 학교에 다시 가면 안돼? 애들이 문자를 보냈는데, 프린터가 다시 작동한대.

민아 친구들 중 기숙사에 사는 애가 연락을 준 것이다.

민아엄마가 내 차를 빼 달라고, 내가 가겠다고 하는걸 뿌리치고 다시 옷을 갈아입고 민아를 태워서 학교로 갔다. 그나마 학교가 가까와서 다행이다. 허나 이번에는 민아가 프린트를 다 할 때까지 차에서 기다려야 했다. 한참 후에 민아가 나오더니 다 했다고 한다. 차 안에서 이제 후련하겠다 했더니 웃으며 그렇다 한다. 애들이 길게 줄을 서서 프린트를 하는 바람에 오래 걸렸다 한다.

그런데 웃다가 갑자기 쿨쩍쿨쩍 울기 시작한다. 이런거 정말 싫다고, 오밤중에 아빠 깨워서 두번이나 학교 왔다 갔다 운전 시키는거 정말 싫다고, 나도 미리 미리 숙제 끝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너만 그런게 아니라 어른들고 그런다, 아빠도 프로젝트 시작할 때는 슬슬 여유잡다가 데드라인이 가까와 오면 매일 오버타임에 주말 근무를 한다고 말해 주었다. 또 그게 사실이기도 하다.

집에 오니 열두시가 다 되었다.
회사는 일찍 출근하면 일찍 퇴근하는 시스템이라 새벽출근을 하곤 했는데, 다음날은 좀 늦게 퇴근하더라도 느즈막히 출근을 하기로 했다.

새벽에 화장실 때문에 깨어 보니 민아는 아직도 뭔가를 하고 있다.

고작 미술대학이 이 정도인데 치대, 의대는 어떠랴! 민아 친구들 중 고등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당연하게도 의예과에 입학한 몇 안되는 애들이 전과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한국은 의예과도 의대지만 여기에서는 생명과학과라 해서 이 과정을 일단 이수 한 후에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의과대에 진학할 수 있다.

한국에 필리핀 출신 국회의원 아줌마가 의대를 다녔다고 했다가 거짓말 파문에 휩싸인 것도 이런 라이프 싸이언스에 대한 한국사람의 오해에 기인한다. 필리핀 대학 과정도 북미의 시스템과 비슷한지 그 아줌마는 의대에 들어갔다가 중퇴했다 했는데, 생명과학과에 입학했다 중퇴했으니 한국으로 치면 의예과 중퇴로 볼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애들이 생명과학과에 입학하면 잘 모르는 한국 부모들은 우리 애가 의대 갔다고 경사났다 하는데, 물론 생명과학과에 진학하려면 대단히 우수해야 하는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의대에 진학하거나 또 진학하더라도 졸업을 하기까지는 산넘어 산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민아 과정에서도 벌써 많은 애들이 공부가 힘이 들어서, 혹은 다른 과가 더 마음에 들어서 중간에 그만 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다시 민아 스토리로 돌아오자.

민아는 한 주에 3-4 일은 새벽 3시에서 4시에 잠들고 여섯시-일곱시에 일어난다. 즉 두시간에서 많이 자면 네시간 자는 것이다. 대신 노는날은 늦잠을 자고 늦잠 잔 날은 다음날 수업준비나 숙제로 또 새벽까지 무언가 꾸물럭 대면서 한다.

주말에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외출을 한다. 주 중에는 바빠서 못 만나는 것 같다. 며칠전 빼빼로 데이인지 뭔지 그 바쁜 와중에 새벽에 초콜렛 과자를 만든다고 난리를 쳐서 야단을 쳤다. 야단을 치면 시무룩 해도 다음날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헤헤거린다. 남자친구는 같은 학교 한 학년 위인 녀석인데 (한국애) 요크대학교에서 간판 과정인 슐리크 라는 경영학과에 다닌다.

참고로 요크 대학교 간판과정은 네 개가 있는데 경영학과인 슐리크, 로스쿨 과정인 오스굿, 민아가 다니는 디자인 과정이 있다. 나머지 하나는 잘 생각이 안 난다.

전에도 남자친구를 사귀었었는데 몇달 사귀다 말다 하더니 이번에는 그나마 좀 오래 가는 것 같다. 이번에 사귀는 녀석은 드물게도 유명 은행에 인턴사원으로 일한다 하니 실력도 있는 것 같고 민아 왈 애가 재미있고 착하고 신용도 있다 한다. 자기 자동차를 몰고 다니나 관찰해 본 바로는 껄렁이는 아닌 것 같고 나름 공부도 잘 하고 성실한 것 같다. 이번에는 얼마나 오래갈 지 한번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지금까지의 민아 남자친구들을 관찰해 본 바에 의하면 민아는 재미나고 화려한 껄렁이들은 취미가 없고 다소 재미는 없더라도 진실하고 공부를 좀 하고 자기 용돈 정도는 스스로 버는 성실이들을 사귀는 것 같다. 그 면에 있어서는 민아를 걱정해야 할 지 모르겠다. 맥도날드 알바가 힘들다고 진작에 때려쳤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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