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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생각

불감청이언정 고소원

민아네 2013. 5. 7. 11:10

 

                         <동네 공원에서 본 연리지(連理枝). 무슨 애틋한 사연이 숨어있을까.>

 

당신 없는 세상은
앙꼬없는 찐빵이요 고무줄 없는 사리마다
모래없는 사막에 김빠진 맥주
줄없는 기타요 건반없는 피아노
절벽에 뽕부라요 굽없는 하이힐
호두없는 호두과자 팥없는 붕어빵
단무지없는 짜장면에 쏘스없는 탕슉
악어없는 라코스테에 자전거 없는 빈폴
박지성 없는 맨유에 광땡잡고 나가리...

 

(*사리마다 : 빤쓰에 해당하는 일본말)

 

당신이야말로 나에게 있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있어야 할 존재요 의미요 목적이라는, 연인의 마음을 잡으려 풀어놓는 이 촌티 풀풀 날리는 사설은 그 옛날 코미디의 소재로 쓰이면서 세간에 즐겨 회자되었다.

 

연인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무슨 말을 못하랴, 하지만 말은 말일 뿐 그렇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된장녀, 된장남이라는 유행어가 돌 정도로, 일부라고는 하지만 연인간의 사랑이 상대방이 자신을 위해 소비하는 재물의 액수로 가늠되기도 하는 이 시대에 차라리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요 불꺼진 항구라는 뻔한 말로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이 그리워진다.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다보면 사랑은 어느새 뜨뜻미지근, 익숙해지고 "아잉 자기야!" 라는 애교섞인 앙탈은 "으이구 이 화상아!" 라는 호통으로 바뀌게 마련이다.

 

이런 와이프에게 앙꼬없는... 을 읊었다가는 그렇찮아도 쑤시는 샥신에 썰렁하게 만든 죄로 날아오는 국자에 맞아 장렬히 전사할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 남의 아내 두 사람을 소개한다.

 

기원전 천년, 중동 이스라엘의 어느 한밤중, 은빛 월륜(月輪)이 쏟아지고 하늘에는 은하수가 신비롭게 흐르는 가운데 으리으리한 대 저택 대리석 노천탕에는 한 아름다운 여인이 나신을 드러낸 채 목욕을 하고 있었다.

 

짙푸른 중동의 밤은 그녀의 나신을 더욱 신비롭게 비추고 있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저 높은 궁궐의 공중정원에서 은밀히 내려다 보는 눈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이미 남편이 있는 유부녀로, 이름은 밧세바, 힛타이트인 엘리암의 딸이자 다윗왕의 충성스러운 장수 우리야의 아내였다.

 

우리야는 블레셋(블레셋의 라틴역은 팔레스타인이지만, 현재 이스라엘과 분쟁중인 팔레스타인과는 다른 족속이었다는 설이 있다)과의 전쟁에 나가있었으며 연일 치열한 교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윗은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고 독수공방중인 밧세바를 궁궐로 불러 여러차례 동침을 했다. 왕의 위력으로 강제로 했는지, 아니면 독수공방에 지친 밧세바가 못이기는척 따랐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다가 덜컥 임신이 되고 말았다.

 

다윗은 이 사실에 세간에 알려질까봐 고민끝에 꼼수를 부려서, 우리야를 위로의 명목으로 전쟁터에서 소환하여 일부러 그의 아내와 동침하게끔 유도하였다. 그러면 지금 밧세바의 태중에 있는 아이를 남편의 아이로 위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우리야는 부하가 전쟁터에서 죽어가고 있는 마당에 나 혼자 편하게 집에서 잘 수 없다 하여 집에 가기를 거부하고 얼마 지나지않아 전쟁터로 돌아가 버렸다.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다윗은 우리야의 상관에게 우리야를 최전방에 홀로 남겨두고 철수하라는 밀명을 내려 마침내 우리야를 죽게 만들었다.

 

이제 합법적으로 우리야의 아내를 자기 마누라로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밧세바는 남편의 장례식 후에 다윗의 여덟번째 후궁으로 들어갔다. 아름다운 밧세바는 그 미모만큼이나 야심찬 여인이었다.

 

첫 아기를 병으로 잃었으나 두번째 태어난 아이가 바로 유명한 솔로몬이었다. 솔로몬이 아무리 영악하고 똑똑하였다 한들 여덟번째 후궁이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등극시키기에는 많은 노력이 따랐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밧세바는 왕위 계승서열 1위인 다윗왕의 넷째아들 아도니야를 제치고 아들 솔로몬을 왕위에 밀어올리는데 성공하였으며 나중에 아도니야마저도 처단해버림으로써 후환을 제거할 수 있었다.

 

결과론적으로 후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도니야는 원래 왕의 그릇이 안되는 멍청하고 포악한 왕자로, 솔로몬은 말할 것도 없고 밧세바는 자기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만든 현명한 여자로 말하지만 그 과정을 놓고 보았을때는 씁슬함을 감출 수 없다.

 

그로부터 750년 후, 때는 기원전 250년경 중국의 송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송나라의 마지막 왕 강왕은 성질이 포악하여 학정을 일삼고 향락을 좋아하여 원성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평가는 왕조의 마지막 왕에게 늘 혹평이 따른다는 세간의 속성상 과장되었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이 강왕(康王)이 경치게 고운 부하의 마누라에게 필이 꽂혔던 모양이다.

 

그 여인은 하씨(河氏)라 불리우는 유부녀로 그의 남편은 한빙(韓憑)이라는 강왕의 사인(舍人 : 하부 조직의 비서실장 정도에 해당하는 벼슬)이었다. 그 시절에 여자들은 이름없이 그냥 성씨로 불렀나 보다.

 

아무튼 강왕이 이 여자가 욕심이 나서, 차지할 목적으로 여인을 징발하고 남편인 한빙을 성 쌓는 토목공사에 강제로 동원시켜버렸다. 한빙은 감금당한 채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강제노동을 하다가 못견디고 그만 자살을 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하씨는 기가 막혔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왕의 총애를 받는 몸이라 측근들의 감시가 보통이 아니었으리라. 그대신 그녀는 자신의 옷을 몰래 어설프게 꿰메어 입고 다녔다.

 

하루는 강왕이 높고 경치좋은 청릉대에 올라 파티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동행했던 그녀는 갑자기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감시자들이 놀라서 그녀의 옷을 재빨리 부여잡았지만 미리 어설프게 꿰메어진 옷깃은 튿어져 버리고 그녀는 추락하여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나중에 그녀의 옷소매 안에서 유서가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왕께선 사는게 좋겠지만
저는 죽는게 좋습니다
원컨데 저의 주검을
한빙과 같이 묻어주오

 

그러나 분노한 강왕은 그녀의 마지막 청을 들어주지 않고 한빙의 무덤이 멀찍이 바라보이는 곳에 그녀를 묻었다.

 

그랬더니 열흘이 지나자 두개의 무덤에서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자라나 뿌리와 가지가 서로를 향해 뻗어서 얽히고 어우려졌으니 후세 사람들이 이 애틋한 사랑을 가리켜 연리지(連理枝)라 불렀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하지만 어떤 아내를 원하는지는 속으로만 갖고 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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