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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한국말 안 잊어버리기

민아네 2024. 2. 22. 19:14

2001년 3월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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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신문을 보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애들에게 영어를 배우게 한다고 한달에 30-40만원씩 들인다고 한다. 일주일에 두세번씩 한두시간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과 떠들어서 영어가 된다면 거액을 들인 보람도 있고 좋은 일이겠지만 이민와서 애들이 영어를 배워가는 과정을 보면 글쎄 그게 그렇게 효과가 있을것 같은 생각이 들지가 않는다.

 

여기서는 한국과는 또 반대로 대부분의 부모들이 애들이 한국말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애들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들어가서 친구들과 사귀기 시작하면서 영어가 한걸음 한걸음씩 늘기 시작한다. 물론 애들도 영어를 습득하기 위해 애들 나름대로 처절한 과정을 거친다.

 

어제 친구집에 놀러가 있던 민아를 데려오는 길에 차 안에서 민아가 기분이 났는지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귀여운 꼬마가 닭장에 가서..."

 

그런데 노래가 중간에 흐지부지 되어 버린다. 아마 그 노래 2절은 돼지 우리에 가서 돼지를 잡으려다 놓쳤다네.. 뭐 이런것으로 알고 있다.

 

"귀여운 꼬마가 돼지장(!)에 가서 돼지를 잡으려다 놓쳤다네. 꾸꾸꿀 돼지 소리를 쳤네... 그꼴을 보며 웃을까 울을까 망설였다네.." 이런 가사인데 민아가 "망설였다네"가 무슨뜻인지 모른다.

"아빠 망설였다네가 뭐야?"
"으응 그거는 이거할까 저거할까 한참 생각하는거야"

 

그러다가 민아의 한국말 실력이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민아야 캐나다 애들이 한국말 못하는건 괜찮아. 하지만 민아는 엄마 아빠도 한국사람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한국사람이니까 한국말 못하면 창피한거야. (어쩌구 저쩌구 이러쿵 저러쿵...) 그러니까 민아는 한국말 잊어버리지 말고 잘 해야해?"

 

"오-케이!"

 

민아 엄마의 친구집에 갔었는데 그집은 애들이 거의 한국말을 놓친 상태였다. 아이들이 한국말을 잊어버린 상태를 "한국말을 놓쳤다" 라고 곧잘 표현한다. 그집은 애들에게 한국말을 시키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안에서는 절대 한국말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애들이 엄마가 부엌일에 바쁜 와중에 서로 놀다가 영어로 한참을 신나게 놀았던 모양이다. 그 집 엄마가 애들에게 꾸중을 했다.

 

"너네들, 집에서 영어쓰지 말랬지!! 앞으로 집에서 영어쓰면 혼난다!! 오케이?"

영어만 할 줄 아는것보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알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이미지 출처 : EBS

 

애들에게 조국을 잊지 않게 한다는 거창한 명분이 아니더라도, 영어 한가지만 할줄 아는것 보다 한국말도 잘할 수 있다면 아이가 컸을때 하나라도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것이 사실이다.

 

아시아의 주요 세가지 언어 즉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 3개 국어만 능통하면 겁날게 없겠다는 여기 사람들 말도 있듯이 그 중 한가지인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이점인지 모른다.

 

민아 학교에 최근에 한국사람 이민자가 많이 들어오면서 민아 학년에 한국애가 너다섯명으로 늘었다. 한반에 애들 숫자가 얼마 안돼는 여기로서는 서너명이라도 대단한 숫자이며 하나의 세력권(?)을 형성하기에 충분한 숫자이다. 그렇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민아를 비롯한 한국애들이 여기 애들에게 놀면서 한국말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한국애: "say 안경~"
캐나다 애: "안뇽~"
한국애: "노, 노, 안뇽 이즈 헬로, 안경 이즈 글래시즈. 세이 어겐,"
한국애: "say 안녕하세요?"
캐나다 애: "안뇽하세오?"

 

이러면 또 지네들끼리 "안경을 안뇽이래~" 이렇게 까르르 웃으면서 난리를 친다음에 또 발음을 교정해 준다.

 

한번은 민아 엄마가 민아친구 엄마, 즉 캐나다 아줌마네 집에 놀러갔더니 난데없이 그 아줌마가 "안뇽하세요~?" 하기에 놀란적이 있다고 한다. 사연인즉슨 그집 애가 한국애들에게 한국말을 배워서 엄마에게도 가르쳐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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