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옛날 글과 사진 (150)
Return to Home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2002년 7월에 썼던 글입니다. -------------------------------------------------------------------- CBC방송에서 한국 가족에 관한 다큐를 방송했다. 아버지는 68년에 이민을 온(유학생으로 온 듯함) 전통적인 한국식 가장이고 역시 걱정많고 사랑많은 전형적인 한국 엄마 스타일의 아내 사이에 딸이 셋이다. 큰딸은 25살, 칼리지를 졸업하고 치기공사로 일을 하고있고 둘째는 의사를 지망하는 의대생, 세째는 금년에 대학을 들어가는 고등학생이다. 대부분의 한국 가정이 그렇듯이 이 가족의 주 수입원도 코너스토어이다. 즉 한국식의 버라이어티 라고 하는 잡화점을 경영하고 있는것이다. 조그만 집을 소유하고 있고 가끔씩 한국사람 친구들과 골프를 치거나 회식 혹은 가라..
2002년 6월에 썼던 글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우리집에 오셨을 때입니다.) ----------------------------------------------------------------------------------------- 월드컵의 열기는 여기에서도 굉장히 뜨겁습니다. 단지 한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한국을 응원하는데 반해 여러 민족이 함께 사는 이곳은 출신 나라별로 각자의 팀을 응원하는것이 다르겠지요. 얼마 전에 있었던 미국과의 게임은 새벽 2시 반에 시작하는 바람에 거의 밤을 새고 회사에 갔었습니다. 지난 14일 한국 폴투갈 게임이 있던날은 정말 굉장했습니다. 한국시간 오후 8시 반이었으니 여기 시간으로는 같은날 오전 7시 반이 경기 시작시간 이었지요. 어쨋든 나는 회사에 출근을 했는..
1997년 7월에 썼던 글입니다. ------------------------------------------------------------- 우리집 앞에는 소위 가스집 이라는게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익히 잘 아시겠지만 사시미칼 품고 다니는 일본 야쿠자 폭주족들이 보고 기가 죽어 코가 석자나 빠져 돌아갔다는, 그 무시무시한 가스통달고 다니는 폭주족들이 상주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에 수입된 온갖 서양과 일본의 못된 날날이 문화는 정말 착실하게 학습하여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도배를 해 놓고는, 그것도 모자라 가스통 창고 앞에서 담배 피우기, 가스통 비운다고 골목에서 가스밸브 틀어놓기, 그옆에서 앞이빨 사이로 침 찍찍 뱉어대며 쮸쮸바 빨기, 골목길에 서너살바기 애들사이로 가스통달고 아슬아슬하게 오토바이 달..
1997년 12월에 썼던 글입니다. --------------------------------------------------------------------------------- 제 집사람은 고등학교 선생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요즘 고등학교에는 교육부 지원으로 외국인 교사, 이를테면 "원어민"을 한두명씩 교사(강사)로 채용,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들 원어민 교사는 주로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일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지원을 하여 한국으로 오게 되는데 이들중에는 해당 나라의 한국교민의 2세도 꽤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외국에서 살다가 말로만 듣던 부모의 나라로 와서 어린 학생들을 위해 나름대로 유창한 영어를 가르친다는것이 기특하게도 느껴집니다. 더우기 이들은 상대적으로 잘 정비되고 다듬어진..
2017년 10월에 썼던 글입니다. ------------------------------------------------------------------------------------- 2년전 회사에서 레이오프 당하고 황당한 마음으로 지내던 시절. 경력과 실력이 이정도 있으니 재취업은 금방 되리라 생각하고 기다리던 나날들.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도 취업은 커녕 잡포스팅조차도 눈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던 암담했던 시간들. 평탄한 회사생활 십년이 지나고 귀동냥으로만 들었던 '스카웃'도 경험했으니 자만심은 높아만 갔고 남부럽지않은 연봉과 여유있는 근무가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하던 무렵, 교만이란 놈이 슬슬 자라고 있었으니... 동료와 밥벌이의 지겨움을 논하며 평생 닭장같은 회사 사무실에서 ..
지하철을 타고 열차의 출입문이 있는곳 서게 되었을 때 한국에서는 대개 출입문에 있는 유리창쪽을 바라보면서 서서 가는데 (밖이 안보이는 깜깜한 터널 안이라 할지라도) 여기에서는 그 반대입니다. 출입문을 등지고 객실쪽 방향으로 돌아서서 갑니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에도 한국에서는 대개 문을 바라보고 서는데 여기에서는 그 반대로 엘리베이터 안쪽방향을 보고 섭니다. 그 뒤에 있는 사람하고 마주보는 자세인데 상당히 뻘쭘합니다. 나는 아직도 적응이 안됩니다. 다만 나는 사무실이 2층이라 엘리베이터를 탈 일이 거의 없습니다. 요즘은 나도 지하철을 타면 지하철 문을 등지고 객실 안을 바라보며 서는데 이게 은근 빈자리 찾기가 좋습니다. 여기는 지하철 노선이 한국에 비해 매우 짧아서 그런지 자리가 나도 비집고 앉는 사람이..
2016년 7월에 썼던 글입니다. -------------------------------------------------------------------------- 민아야, 너 영어 모를때 생각나? 응. 완전 또렷하게 생각나. 한번은 유치원 선생님이 오늘 생일이냐고 물었거든. 그런데 나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거야. 그때는 예스하고 노 밖에 몰랐어. 그래서 그냥 예스! 했지. 그래서 선생님이 그날 생일인 다른애랑 같이 내 생일파티도 해줬잖아. 생일도 아닌데 종이모자쓰고 생일파티를 했어. 나중에 엄마가 선생님한테 얘기했잖아. 오늘 민아 생일 아니라구. 그때는 선생님이 말하는거 하나도 모르겠고 그냥 슬러- SLUR 하게 들렸어. (slur - 단어들을 붙여서 연음으로 설렁설렁 발음하는 것) 우리 민아 영어..
2014년 1월에 썼던 글입니다. ---------------------------------------------------------------------- 오늘은 야한 얘기로 풀어보겠습니다. 일찌기 추사는 "일독이호색삼음주"(一讀二好色三飮酒)라, 제 일의 즐거움은 책읽기요 두번째는 여자, 세번재는 술마시기라 했으니, 학자로서 프로페셔널한 탐구를 제 일로 친 것 까지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바로 다음에 여자 밝히기를 꼽은 것은 세간에 알려진 추사의 고고한 이미지에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추사는 첫번째 부인인 한산 이씨와 사별 후 3년간 독신으로 지내다가 23살때 예안 이씨와 재혼했다. 추사는 두번째 부인과도 후사가 없자 첩을 들여 '상우'라는 자식을 보았는데,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둘째 아내가 있..
꿈을 꾸었나? 한달여의 한국 방문이 마치 꿈만같아서, 다시 돌아온 지금도 새벽에 문득 선잠을 깬 것 처럼 구름을 걷는 것 같다. 한국의 모든것은 대단히 강렬했다. 쉴새없이 증기를 뿜어내는 찜통같은 듯한 그 무더위와 습기, 거리의 소음, 냄새, 지하철, 쉴새없이 흐르는 자동차와 사람들의 물결, 더욱 높아지고 화려해진 건물, 도무지 없는게 없는 상점들. 과거 한국에 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마치 이방인이 된 듯한 낯설음에 두리번거리며 무엇이든 자꾸만 묻고 확인해도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차라리 완전한 이방인이었다면 새로운 모든 것을 즐기기나 했을 것을, 과거의 기억과 맞물려 돌아가는 지금의 현실은, 이젠 더이상 맞지 않는 톱니바퀴가 힘겹게 삐걱이듯 어색한 긴장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지팡이를 짚은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