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2/19 (9)
Return to Home
2017년 10월에 썼던 글입니다. ------------------------------------------------------------------------------------- 2년전 회사에서 레이오프 당하고 황당한 마음으로 지내던 시절. 경력과 실력이 이정도 있으니 재취업은 금방 되리라 생각하고 기다리던 나날들.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도 취업은 커녕 잡포스팅조차도 눈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던 암담했던 시간들. 평탄한 회사생활 십년이 지나고 귀동냥으로만 들었던 '스카웃'도 경험했으니 자만심은 높아만 갔고 남부럽지않은 연봉과 여유있는 근무가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하던 무렵, 교만이란 놈이 슬슬 자라고 있었으니... 동료와 밥벌이의 지겨움을 논하며 평생 닭장같은 회사 사무실에서 ..
지하철을 타고 열차의 출입문이 있는곳 서게 되었을 때 한국에서는 대개 출입문에 있는 유리창쪽을 바라보면서 서서 가는데 (밖이 안보이는 깜깜한 터널 안이라 할지라도) 여기에서는 그 반대입니다. 출입문을 등지고 객실쪽 방향으로 돌아서서 갑니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에도 한국에서는 대개 문을 바라보고 서는데 여기에서는 그 반대로 엘리베이터 안쪽방향을 보고 섭니다. 그 뒤에 있는 사람하고 마주보는 자세인데 상당히 뻘쭘합니다. 나는 아직도 적응이 안됩니다. 다만 나는 사무실이 2층이라 엘리베이터를 탈 일이 거의 없습니다. 요즘은 나도 지하철을 타면 지하철 문을 등지고 객실 안을 바라보며 서는데 이게 은근 빈자리 찾기가 좋습니다. 여기는 지하철 노선이 한국에 비해 매우 짧아서 그런지 자리가 나도 비집고 앉는 사람이..
2016년 7월에 썼던 글입니다. -------------------------------------------------------------------------- 민아야, 너 영어 모를때 생각나? 응. 완전 또렷하게 생각나. 한번은 유치원 선생님이 오늘 생일이냐고 물었거든. 그런데 나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거야. 그때는 예스하고 노 밖에 몰랐어. 그래서 그냥 예스! 했지. 그래서 선생님이 그날 생일인 다른애랑 같이 내 생일파티도 해줬잖아. 생일도 아닌데 종이모자쓰고 생일파티를 했어. 나중에 엄마가 선생님한테 얘기했잖아. 오늘 민아 생일 아니라구. 그때는 선생님이 말하는거 하나도 모르겠고 그냥 슬러- SLUR 하게 들렸어. (slur - 단어들을 붙여서 연음으로 설렁설렁 발음하는 것) 우리 민아 영어..
2014년 1월에 썼던 글입니다. ---------------------------------------------------------------------- 오늘은 야한 얘기로 풀어보겠습니다. 일찌기 추사는 "일독이호색삼음주"(一讀二好色三飮酒)라, 제 일의 즐거움은 책읽기요 두번째는 여자, 세번재는 술마시기라 했으니, 학자로서 프로페셔널한 탐구를 제 일로 친 것 까지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바로 다음에 여자 밝히기를 꼽은 것은 세간에 알려진 추사의 고고한 이미지에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추사는 첫번째 부인인 한산 이씨와 사별 후 3년간 독신으로 지내다가 23살때 예안 이씨와 재혼했다. 추사는 두번째 부인과도 후사가 없자 첩을 들여 '상우'라는 자식을 보았는데,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둘째 아내가 있..
꿈을 꾸었나? 한달여의 한국 방문이 마치 꿈만같아서, 다시 돌아온 지금도 새벽에 문득 선잠을 깬 것 처럼 구름을 걷는 것 같다. 한국의 모든것은 대단히 강렬했다. 쉴새없이 증기를 뿜어내는 찜통같은 듯한 그 무더위와 습기, 거리의 소음, 냄새, 지하철, 쉴새없이 흐르는 자동차와 사람들의 물결, 더욱 높아지고 화려해진 건물, 도무지 없는게 없는 상점들. 과거 한국에 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마치 이방인이 된 듯한 낯설음에 두리번거리며 무엇이든 자꾸만 묻고 확인해도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차라리 완전한 이방인이었다면 새로운 모든 것을 즐기기나 했을 것을, 과거의 기억과 맞물려 돌아가는 지금의 현실은, 이젠 더이상 맞지 않는 톱니바퀴가 힘겹게 삐걱이듯 어색한 긴장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지팡이를 짚은 아버지,..
단편적인 군사학적 흥미로 월남전에 관한 자료를 접하였다가 우연히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현장 체험담을 읽게되어 하나 하나 탐독하다보니 그만 몇 주가 훌쩍 지나버리고 말았다. 나의 아버지 역시 월남전에 맹호부대의 일원으로 참전한 월남전 참전용사인 연고로, 어릴적 흑백사진이 빼곡한 앨범에 이국적인 월남을 배경으로 찍은 아버지의 사진을 노상 보아왔던 터라 더욱 흥미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어릴적 보아왔던 사진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빛바랜 흑백사진과 함께 생생한 체험담을 접하니 그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의 눈물과 희생에 새삼 가슴이 뜨거워지며 숙연해지는 것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불과 십수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그 시절, 규정과 법이 정해놓은 테두리 안에서만의 고지식한 삶으로는 생존이 어려웠던, 그래서 ..
인터넷을 보다가 소동파의 시를 만났다. 송나라때 시인 소동파는 사십 중반의 나이에 잘나가던 관직에서 떨려나 황주라는 곳의 말단 공무원으로 쫒겨났다. 그는 장강(長江)을 바라보며 허탈한 심경을 읊는다. 自笑平生爲口忙 자소평생위구망 老來事業轉荒唐 노래사업전황당 평생을 먹고살기위해 바쁘게 뛰었던게 웃음만 나오는구나 이제 늙으니 내 하는 일이란게 황당하기만 하다 - 소식(소동파) 내가 왕년에 누군데, 송나라 최고의 시인이자 학자, 화가로 24시간이 모자라도록 중요한 자리에 여기저기 불려다니던 귀하신 몸이 아니었던가? 줄 한번 잘못 섰다가(구양수와 개혁 신법의 이견으로 밀려남) 이런 시골바닥으로 쫒겨나, 있는지도 모를 말단 관직에서 안해도 그만인 일이나 하고 있으니, 참 황당하도다! 그는 유배지에서 술 만드는 양..
2011년 8월에 썼던 글입니다. --------------------------------------------------------------------------------------- 전남 구라군에 매일 새벽 신비한 샘물을 길어오는 할머니가 있다는데. 어느날 새벽 제보를 받고 급히 달려간 제작팀. 멍! 멍! 멍! 멍! 멍! 아우우우우~~~(배경음 : 동네 개짖는 소리)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던 제작팀. 새벽 산보나온 동네사람들에게 물어보는데. - 몰러, 난 암것두 몰러! - 아 그런 노인네가 있다는 소린 듣긴 혔어. 그때! 갑자기 다가온 한 아주머니의 결정적 제보! - 쪼~~ 짝 뒷산으로 가보시요 잉. 내가 말혔다는 소리 어디가서 절때 허지말고. 은밀한 제보를 받은 제작팀, 새벽 어둠을 뚫고 아주..
2011년 7월에 썼던 글입니다. ----------------------------------------------------------------------- 어디선가 읽은 글에 많이 공감이 되어, 나의 경우를 반영하여 생각나는 대로 정리 소개해본다. 우리집 여자 둘이 쇼핑몰에 가자고 하면 지레 겁부터 난다. 티셔츠 한 장을 사려고 갔으면 당연히 쇼핑몰 안의 옷가게로 가면 된다. 그런데 여자들이 쇼핑몰 입구에서 불과 수십미터 떨어진 옷가게에 이르는 시간만 무려 두시간. 나 혼자 옷을 사러 간 경험은 이제껏 한번도 없지만 만약 나 혼자 바지를 사러 간다면, 일단 옷가게로 들어가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바지를 집어들고 싸이즈 라벨만 확인한 후 붙어있는 정가대로 지불하고 나온다. 총 소요시간은 10분.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