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옛날 글과 사진/캐나다에서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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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나? 한달여의 한국 방문이 마치 꿈만같아서, 다시 돌아온 지금도 새벽에 문득 선잠을 깬 것 처럼 구름을 걷는 것 같다. 한국의 모든것은 대단히 강렬했다. 쉴새없이 증기를 뿜어내는 찜통같은 듯한 그 무더위와 습기, 거리의 소음, 냄새, 지하철, 쉴새없이 흐르는 자동차와 사람들의 물결, 더욱 높아지고 화려해진 건물, 도무지 없는게 없는 상점들. 과거 한국에 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마치 이방인이 된 듯한 낯설음에 두리번거리며 무엇이든 자꾸만 묻고 확인해도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차라리 완전한 이방인이었다면 새로운 모든 것을 즐기기나 했을 것을, 과거의 기억과 맞물려 돌아가는 지금의 현실은, 이젠 더이상 맞지 않는 톱니바퀴가 힘겹게 삐걱이듯 어색한 긴장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지팡이를 짚은 아버지,..
단편적인 군사학적 흥미로 월남전에 관한 자료를 접하였다가 우연히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현장 체험담을 읽게되어 하나 하나 탐독하다보니 그만 몇 주가 훌쩍 지나버리고 말았다. 나의 아버지 역시 월남전에 맹호부대의 일원으로 참전한 월남전 참전용사인 연고로, 어릴적 흑백사진이 빼곡한 앨범에 이국적인 월남을 배경으로 찍은 아버지의 사진을 노상 보아왔던 터라 더욱 흥미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어릴적 보아왔던 사진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빛바랜 흑백사진과 함께 생생한 체험담을 접하니 그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의 눈물과 희생에 새삼 가슴이 뜨거워지며 숙연해지는 것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불과 십수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그 시절, 규정과 법이 정해놓은 테두리 안에서만의 고지식한 삶으로는 생존이 어려웠던, 그래서 ..
인터넷을 보다가 소동파의 시를 만났다. 송나라때 시인 소동파는 사십 중반의 나이에 잘나가던 관직에서 떨려나 황주라는 곳의 말단 공무원으로 쫒겨났다. 그는 장강(長江)을 바라보며 허탈한 심경을 읊는다. 自笑平生爲口忙 자소평생위구망 老來事業轉荒唐 노래사업전황당 평생을 먹고살기위해 바쁘게 뛰었던게 웃음만 나오는구나 이제 늙으니 내 하는 일이란게 황당하기만 하다 - 소식(소동파) 내가 왕년에 누군데, 송나라 최고의 시인이자 학자, 화가로 24시간이 모자라도록 중요한 자리에 여기저기 불려다니던 귀하신 몸이 아니었던가? 줄 한번 잘못 섰다가(구양수와 개혁 신법의 이견으로 밀려남) 이런 시골바닥으로 쫒겨나, 있는지도 모를 말단 관직에서 안해도 그만인 일이나 하고 있으니, 참 황당하도다! 그는 유배지에서 술 만드는 양..
2011년 7월에 썼던 글입니다. ----------------------------------------------------------------------- 어디선가 읽은 글에 많이 공감이 되어, 나의 경우를 반영하여 생각나는 대로 정리 소개해본다. 우리집 여자 둘이 쇼핑몰에 가자고 하면 지레 겁부터 난다. 티셔츠 한 장을 사려고 갔으면 당연히 쇼핑몰 안의 옷가게로 가면 된다. 그런데 여자들이 쇼핑몰 입구에서 불과 수십미터 떨어진 옷가게에 이르는 시간만 무려 두시간. 나 혼자 옷을 사러 간 경험은 이제껏 한번도 없지만 만약 나 혼자 바지를 사러 간다면, 일단 옷가게로 들어가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바지를 집어들고 싸이즈 라벨만 확인한 후 붙어있는 정가대로 지불하고 나온다. 총 소요시간은 10분. 우..
2010년 5월에 썼던 글입니다. -------------------------------------------------------------------------------------- 봄이 왔습니다. 겨울의 잔상이 유달리 길게 드리웠던 초봄의 쌀쌀한 날씨를 뚫고 기어코 봄이 왔습니다. 뒷뜰의 라일락 향기는 쏟아지는 햇살과 섞여 더욱 달큰하게 퍼지고, 배나무 꽃은 온 나무를 하얗게 덮었다가, 지난 밤 내린 비에 뒷뜰 잔디를 하얗게 수놓았습니다. 이사올 때는 고만고만했던 나무가, 이제는 제법 키도 커지고 몸통과 가지가 우람해졌습니다. 나무에 싹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과정을 온전히 보는 것은 이곳에 와서도 한참이 지나서였던 것 같습니다. 보려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나의 감각이..
2010년 1월에 썼던 글입니다. ------------------------------------------------------------------------ 어느분께서 쓰신 불교의 일곱가지 보시(布施)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혼자 보기 아까운 너무 좋은 글이라 여기 옮겨봅니다. 어떤 이가 석가를 찾아가 호소를 하였습니다. "저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이 무슨 이유입니까?" " "그것은 네가 남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저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빈털털이입니다. 남에게 줄 것이 있어야 주지 뭘 준단 말입니까?" "그렇지 않느니라. 아무리 재산이 없더라도 줄 수 있는 일곱 가지는 누구나 다 있는 것이다." 첫째는 화안시(和顔施)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2009년 8월에 썼던 글입니다. ----------------------------------------------------------------------------------- 1942년 겨울 러시아의 스탈린그라드. 1942년 6월 청색작전으로 명명된 스탈린그라드 진격은 초기에는 독일의 승승장구로 시작되었다. 스탈린그라드에 대한 무자비한 폭격으로 시작된 전투는 쏘련군의 필사적인 저항으로 양측의 엄청난 희생자를 내면서 지속되었으나, 겨울이 되면서 독일에 점점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쏘련군의 천왕성작전 (Operaion Uranus) 성공으로 독일군은 측면을 돌파당하고 쏘련군에게 포위되어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보급로가 차단됨으로써 아사자와 동사자가 속출했으나 히틀러는 주변 참모들의 후퇴건의를 무시하고 ..
2009년 8월에 썼던 글입니다. ----------------------------------------------------------------------------- 일전에 어느 한국식당에 갔다가 밥을 먹게 되었는데, 아내가 만두국을 시키면서 주인 아줌마에게 맛이 괜찮느냐고 물어봤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아줌마 대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즉 만두가 시중에서 파는 만두가 아니고 직접 만든 만두라고 하면서, "먹을만 하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파는 입장에서는 하나라도 더 "대단히 맛있다" "뛰어나다" 라고 하고 싶었을텐데, 그냥 "먹을만 하다" 라고 했다니, 오히려 그 말이 상인의 대답이 아닌, 애 키우는 평범한 아줌마의 말로 들려서 더 믿음이 가더군요. 역시 그 소리가 거짓이 아니어서, 그렇게 ..
2009년 8월에 썼던 글입니다. ------------------------------------------------------------------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때 영화 보는데 재미를 붙여서 DVD 를 사 모으고, 인터넷 유료 싸이트에 가입해서 다운을 받아 새로 산 디스크에 저장해 놓고, 프로젝터를 사서 큰 화면으로 감상을 하다가 언제부터인지 흥미를 잃어서 오랫동안 영화를 보지 않았었다. 지난주에 회사동료가 이번에는 인도영화가 아카데미 상을 받았다고 해서 호기심이 생긴것이 발단이었다. "Slumdog Millionare, 슬럼 독 밀리어네어". 한국말로는 "개천에서 용났네" 정도로 해석하면 좀 촌스러울까.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지다 보니 그다지 어렵지 않게 감상할 수 있었다. 인도..
2009년 5월에 썼던 글입니다. --------------------------------------------------------------------------------- 2008년 1월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했던 Life After People 을 감상했습니다. 데이빗 드 브리에스 감독이 제작한 다큐 형식의 이 영화는, 어느날 갑자기 지구상에서 인간이 사라진다는 가정하에 그 이후 벌어지는 현상을 엔지니어링, 생물학, 지질학등의 여러 과학의 측면에서 조명했습니다. 영화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이 남긴 인류 문명이 어떻게 자연에 의해 정복되어 스러져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갑자기 사람이 사라진 다음날, 처량하게 보이는 어느 가정집의 치직거리는 테레비 화면으로 시작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