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2 (124)
Return to Home
20130102 2013년 1월에 썼던 글입니다. -------------------------------------------------------------------------- 어릴 때 끼니가 되면 밥을 먹고 나서도 떡 같은 간식이 있으면 어머니는 '떡배 따로 밥배 따로' 라면서 나에게 권하곤 했다. '밥배 따로 떡배 따로'는 세월이 지나가며 바리에이션을 거듭하여 '밥배 술배' 혹은 '밥배 고구마배' '밥배 피자배' '밥배 짜장면배' 등등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이런 먹거리의 조합에서 주목할 점은 '밥'은 꼭 들어간다는 것이다. 고려도경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사람들이 보통 두끼를 먹었다 한다. 왕족은 하루 세끼, 귀족은 두끼, 평민은 사정이 좋으면 두끼, 그렇지 않으면 한끼로 넘어갔다고 한다. 또한..
20120629 2012년 6월에 썼던 글입니다. ------------------------------------------------------------------------------------ 영화 건축학 개론을 보았다. 건축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직장에서 여태까지 한 일이란 건설이지 건축과는 거리가 있는 일. 학창시절 귓등으로나마 들었던 르 꼬르뷔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벌써 기억의 자욱한 안개속에 거뭇한 형체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영화의 배경은 내가 결혼 후 상당기간 살았던 정릉이었다. 정릉은 그 전까지 살았던 강남의 신흥 타운과는 사뭇 다른 곳이었다. 한창 개발바람이 불 때 강남의 신흥 타운에서는 판자촌이나 논밭이 야트막한 축대를 돌려친 집터로 변하는가 ..
20120615 2012년 6월에 썼던 글입니다. -------------------------------------------------------------------------------------------------- 이 바닥에서 구른지 이십여년. 한국에 있는 동기들은 잘나가는 관리자요 임원에 고위 공무원이지만 나는 여전히 그냥 한가지 기술로 먹고 산다. 주변을 둘러봐도 머리 허연 할배들이 많은것을 보면 내 미래도 저렇지 않을까 한숨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쩌랴 이것이 여기의 라이프스타일. 그게 싫었으면 여기 오질 말았어야지. 게다가 한국에 계속 있었더라면 이라는 가정도 나의 화려한 현재를 보장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먹을것 입을것 자는것 소시민답게 소소하게 쓰면서 큰 걱정없이 사는 나는 다..
20120126 2012년 1월에 썼던 글입니다. ----------------------------------------------------------------------------------- 백고불여일블. 과거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씨가 기고문에 썼다가 학자답지 못한 천박한 표현이라 하여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은 사연이 있는 이 말은 백번의 고고가 한번 블루스보다 못하다는 의미를 갖고있다. 386세대가 학창시절을 지낸 7, 80년대의 춤문화는 트위스트에서 고고, 그리고 디스코로 넘어가는 변화무쌍한 격변의 시대였다. 칠십년대 중후반 풀밭에서 야전 틀어놓고 까까머리에 삐딱하게 얹힌 교모에 교련복 차림으로 발바닥 비비며 먼지 피워올리던 촌놈들이 드디어 수출 백억불 대망의 팔십년대가 되자 현란한 조명..
20110909 2011년 9월에 썼던 글입니다. ------------------------------------------------------------------------------------- 영어가 저절로 익숙해진다 : 아니다. 성인이 되어서 이민온 사람은 포기해야 한다. 간혹 드물게 성인이 되어 왔어도 영어에 통달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한국식 액센트는 어쩔 수 없다. 어려서 이민온 애들은 영어가 완벽할 것이다. : 아니다. 중학교 이후에 이민온 애들은 한국 액센트를 피하기 어렵다. 영어만 하고 한국말 못하는 애들은 영어가 완벽할 것이다 : 아니다. 한국에서 살고 한국말만 한다고 한국말이 완벽한가? 매일 집에서 양식을 먹을 것이다. : 아니다. 밥에다 찌개와 김치, 순..
20110408 2011년 4월에 썼던 글입니다. ------------------------------------------------------------------------------------- 민아 학교에는 한국 유학생들이 적지않게 있습니다. 옛날부터 이 학교는 이민 온 학생이든, 아니면 유학생이든간에 한국사람에게 인기가 있어왔습니다. 그 이유를 듣는다면 아마 누구나 실소를 금치 못할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같지 않은 이유란 유태인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라는 것입니다. 분명 이 동네에는 유태인 회당인 시네각도 있고 주말이면 검정 옷에 빵떡모자 (키파, Kippah)를 쓰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줄줄이 회당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유태인들이 많이 사는 것은 맞습니다. 한국애들에게 이 학교가 ..
20100423 2010년 4월에 썼던 글입니다. ------------------------------------------------------------------------------------------- 사람은 감정을 나눌 줄 아는 존재다. 다른 이의 기쁨을 축하하고, 어려움과 슬픔을 격려하고 위로한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을 나누는 일은 때로는 쉬운일이 아니다. 때로는 말로써 글로써 표현 못하는 감정이 있다. 말을 아무리 잘 한다 해도, 표정을 아무리 배우 뺨치게 잘 짓는다 해도, 그것에 진심이 담기지 않는다면 보기좋은 포장지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또한 감정이 실렸다 한들 순간적인 기분이라면 포장을 열자마자 사라져 버리는 허무한 공기와 같다. 좋은 일에 감정을 나누는 것 보다는, 슬픈 일에 ..
20100423 2010년 10월에 썼던 글입니다. ---------------------------------------------------------------------------------- 요즈음 원자력 발전소와 관련된 매우 오래된 도면을 보고 있다. 도면 승인날짜를 보니 1952년, 1953년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일때 캐나다에서는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해서 운영하고 있었나보다. 그당시에 컴퓨터 설계가 있을리가 없으니 모두 수작업 도면인데, 그 수준이 현재 컴퓨터 설계보다 나으면 나았지 정확성이나 구성면에서 전혀 뒤떨어짐이 없다. 확실히 옛날의 설계사상과 현재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원가절감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있는 요즘의 설계와는 다른, 일종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다. 전자제품만 하더라도 ..
20100219 2010년 2월에 썼던 글입니다. ------------------------------------------------------------------------------------- 기사식당은 말 그대로 기사들이 들러서 밥먹고 가는 식당이다. 종업원이 빨간 불이 번쩍거리는 경광등을 들고 마치 교통정리하는 사람이 차량유도를 하듯이 호객을 하면, 얼떨결에 속아서 주차장으로 들어온 운전수들은 귀신에 홀렸다는 듯 허탈한 웃음과 함께 엎어진김에 쉬어간다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가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속았다고 화를 내는 사람은 여직껏 듣도 보도 못했으니 얍삽한 상술도 푸짐한 기사식당의 인심에는 녹아버리는 것일까. 그러나 음식 메뉴갖고 얍삽한 꼼수를 부리다가는 단박에 망하는 곳이 바로 기사식당..
20090706 2009년 7월에 썼던 글입니다. -------------------------------------------------------------------------------------- 이민 10년 1. 이민자에게 톨러런스란 없다. 노 톨러런스(No tolerance), 토론토의 하이웨이중에 폭이 좁고 곡선이 많은 하이웨이 404에는 이런 간판이 있다. 최고속도 90. 제로 톨러런스. 경찰 순찰지역. 제한속도 90키로에서 단 1키로만 넘어서도 가차없이 단속을 하겠으니 이 도로에서만큼은 제한속도를 칼같이 지키라는 표지다. 지난 주말 친한 지인들과 모임을 가졌다. 즐거운 얘기 도중에 이민자의 입장에서 피해를 본 사례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가 나왔다. 한 사람이 인종차별이라 일컫는 일을 당해..